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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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되었으며, 총 299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선거는 1994년 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라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를 통해 치러졌으며, 투표율은 63.9%를 기록했다. 선거 배경으로는 1995년 지방선거 참패와 전직 대통령 구속으로 인한 김영삼 대통령의 위기, 김대중의 정계 복귀와 신당 창당,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창당 등 정치 지형 변화가 있었다. 주요 정당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그리고 통합민주당이 참여했다. 선거 결과 신한국당이 원내 1당을 차지했으나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고, 지역주의 정치 구도가 심화되는 결과를 보였다.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구속으로 위기에 몰린 김영삼 대통령은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정치 신인들을 영입하며 변화를 모색했다.[1] 김대중은 정계 복귀 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야권 재편을 주도했고, 김종필은 신한국당과 결별 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여 "3김" 구도를 재현했다.[1]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4년 3월 16일에 제정된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일명 「통합선거법」)에 따라 실시되었다. 의원 임기는 4년이며,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를 채택하여 총 299석의 의원을 선출했다.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로 253석을, 전국구는 비례대표제로 46석을 선출했다.[2]
김영삼 대통령의 여당인 신한국당은 5공 색채를 벗고 인재 영입을 통해 총선에 임했다.[1] 김대중 총재가 창당한 제1야당 새정치국민회의는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했다.[1]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은 충청도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1] 3김 정치 청산을 내걸었던 통합민주당은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1]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
2. 선거 배경
한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3김 정치 청산'과 정치 개혁을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했으나,[1] 통합민주당은 군소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1]
3. 선거 제도
이전 총선까지 전국구 의석은 지역구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되었으나, 이번 선거부터는 지역구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도록 개정되었다. 전국구 의석은 지역구에서 5석 이상을 획득하거나, 지역구 총 득표율이 3%를 초과하는 정당에게 헤어식 최대 잉여 법으로 배분되었다.[2]
총 선거인 수는 31,488,294명이었으며, 이 중 20,122,799명이 투표하여 63.9%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14대 총선의 투표율 71.9%보다 낮은 수치이다. 지역별 투표율은 다음과 같다.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 투표율 61.0% 60.5% 60.9% 60.1% 64.5% 63.0% 61.5% 69.3% 68.3% 68.7% 68.3% 69.8% 71.7% 66.0% 71.1%
지역구 후보자는 총 1,389명이었으며, 주요 정당별 후보자 수는 다음과 같다.정당 후보자 수 신한국당 253 새정치국민회의 230 통합민주당 224 자유민주연합 219 무소속 393
4. 주요 정당 및 후보
5. 선거 결과
정당 득표 의석 득표수 % 지역구 전국구 합계 신한국당 6,783,730 34.52 121 18 139 새정치국민회의 4,971,961 25.30 66 13 79 자유민주연합 3,178,474 16.17 41 9 50 통합민주당 2,207,695 11.23 9 6 15 무당파국민연합 177,050 0.90 0 0 0 대한민주당 3,114 0.02 0 0 0 21세기한독당 1,693 0.01 0 0 0 친민당 571 0.00 0 0 0 무소속 2,328,785 11.85 16 0 16 합계 19,653,073 100 253 46 299
전국구 의석은 총 46석으로,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었다.colspan="2" | 신한 국민 자민 민주 전체 34.5 25.3 16.2 11.2 수도권 서울특별시 36.5 35.2 11.3 13.5 인천광역시 38.2 29.5 14.5 11.0 경기도 33.2 27.4 18.6 13.9 충청도 대전광역시 21.4 11.4 49.8 12.6 충청북도 31.5 8.9 39.4 8.9 충청남도 28.9 6.1 51.2 7.9 호남 (전라도) 광주광역시 7.5 86.2 0.8 2.0 전라북도 23.4 63.7 0.5 5.8 전라남도 17.7 71.0 0.8 1.3 강원도 37.3 6.7 23.6 14.5 영남 (경상도) 대구광역시 38.2 1.4 35.8 4.0 부산광역시 55.8 6.4 5.5 18.8 경상북도 34.9 1.6 20.6 6.9 경상남도 46.5 4.2 4.7 14.7 제주특별자치도 37.2 29.4 1.2 2.0
5. 1. 총괄
金泳三, 김영삼중국어 대통령에 반대했던 사람들과 정치 신인들까지 끌어모아 인재 영입을 하여 15대 총선에서 원내 1당 지위는 지켰지만 과반수에 미달하는 139석을 차지했다.[3] 특히 민주당계 지지가 강한 서울에서 27석을 차지해 집권 여당이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승리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부산·경남(PK)에서 압승했고 부산광역시, 제주도에서 모든 의석을 석권하고 전북 군산시 을에서 1석을 당선시켜 지역주의 완화에 성공했으나,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광역시에서 자유민주연합와 무소속 후보에게 일격을 당하고 충청도 지역에서 대참패를 당했다. 이후 무소속, 통합민주당, 자유민주연합 의원을 대거 영입해 원내 과반수를 확보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민주당계의 정신적 지주이자 차기 대선주자 金大中, 김대중중국어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호남계, 동교동계 인사들이 민주당에서 대거 탈당하여 창당과 동시에 입당했다. 1여다야 구도 속에서 79석을 차지했다.[3] 하지만 기대했던 서울 지역에서 표가 분산되면서 중진 의원들 상당수가 낙선했고, 수도권에서 부진했으며 충청도, 영남, 강원도, 제주도에서 1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개헌 저지선인 100석 이상 확보에 실패했고, 김대중 총재도 비례대표제로 출마했지만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그나마 민주당계의 심장부이자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 1곳을 제외하고 모두 석권한 것이 위안이었다.
자유민주연합은 충청도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反YS 非민주 정서가 강하던 대구에서 8석을 차지하며 신한국당을 압도하였다.[3] 또한 강원도, 경기도, 경북 지역에서도 선전하였다. 이로써 자민련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으며, 제15대 국회는 3당 구도로 개원했다.
통합민주당은 동교동계, 호남계 인사들이 새정치국민회의로 대거 탈당하면서 표가 분산되어 15석을 차지,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3] 이후 신한국당 측의 의원 빼가기로 더욱 위축됐으며, 결국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과 합당했다. 당시 신한국당과 합당에 반대한 의원들은 새정치국민회의로 넘어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여당 생활을 했다.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지역구 | 전국구 | 합계 | 증감 |
---|---|---|---|---|---|---|
신한국당 | 6,783,730 | 34.52 | 121 | 18 | 139 | |
새정치국민회의 | 4,971,961 | 25.30 | 66 | 13 | 79 | |
자유민주연합 | 3,178,474 | 16.17 | 41 | 9 | 50 | |
통합민주당 | 2,207,695 | 11.23 | 9 | 6 | 15 | |
무당파국민연합 | 177,050 | 0.90 | 0 | 0 | 0 | ±0 |
대한민주당 | 3,114 | 0.02 | 0 | 0 | 0 | ±0 |
21세기한독당 | 1,693 | 0.01 | 0 | 0 | 0 | ±0 |
친민당 | 571 | 0.00 | 0 | 0 | 0 | ±0 |
무소속 | 2,328,785 | 11.85 | 16 | - | 16 | |
합계 | 19,653,073 | 100 | 253 | 46 | 299 | ±0 |
유효표 | 19,653,073 | 97.67 | colspan=4 | | |||
기권표/무효표 | 469,726 | 2.33 | colspan=4 | | |||
합계 | 20,122,799 | 100 | colspan=4 | | |||
선거인수/투표율 | 31,488,294 | 63.91 | colspan=4 | |
이 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21명, 전국구에서 22명, 총 43명의 여성 후보자가 출마하였다.[5] 선거 결과, 8년 만에 지역구에서 2명(새정치국민회의 1명, 무소속 1명)이 당선되었고(88년과 92년에는 전국구에서만 당선), 전국구에서는 7명이 당선되었다.[4] 총선거 후 실시된 1998년 보궐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가 당선되어 지역구 출신 여성 의원은 3명이 되었다.
5. 2. 정당별 당선자 수
정당 | 득표 | 의석 | ||||
---|---|---|---|---|---|---|
득표수 | % | 지역구 | 전국구 | 합계 | ||
신한국당 | 6,783,730 | 34.52 | 121 | 18 | 139 | |
새정치국민회의 | 4,971,961 | 25.30 | 66 | 13 | 79 | |
자유민주연합 | 3,178,474 | 16.17 | 41 | 9 | 50 | |
통합민주당 | 2,207,695 | 11.23 | 9 | 6 | 15 | |
무당파국민연합 | 177,050 | 0.90 | 0 | 0 | 0 | |
대한민주당 | 3,114 | 0.02 | 0 | 0 | 0 | |
21세기한독당 | 1,693 | 0.01 | 0 | 0 | 0 | |
친민당 | 571 | 0.00 | 0 | 0 | 0 | |
무소속 | 2,328,785 | 11.85 | 16 | 0 | 16 | |
합계 | 19,653,073 | 100 | 253 | 46 | 299 |
15대 총선에서 집권 여당 신한국당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당명 변경과 정치 신인 영입으로 원내 1당(139석)을 유지했다. 특히 서울특별시에서 27석을 차지하며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승리했고, 부산광역시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모든 의석을 석권했다. 그러나 대구광역시와 충청 지역에서는 자유민주연합과 무소속 후보에게 밀렸다. 이후 무소속 및 타 정당 의원들을 영입하여 원내 과반수를 확보했다.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며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는 7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서울특별시에서 표 분산으로 중진 의원들이 낙선하고 수도권, 충청권, 영남권, 강원·제주 지역에서 부진했다. 김대중 총재도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호남 지역에서는 압승을 거두었다.
자유민주연합은 충청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대구광역시에서 8석을 차지하며 선전,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며 3당 구도를 형성했다.
통합민주당은 15석으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고, 이후 신한국당에 흡수 합당되었다. 합당에 반대한 의원들은 새정치국민회의로 넘어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여당이 되었다.
전국구 의석은 총 46석으로,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었다.
5. 3. 지역별 지역구 의원 수
지역 | 총 의석 수 | 획득 의석 수 | ||||
---|---|---|---|---|---|---|
신한국당 | 새정치국민회의 | 자유민주연합 | 민주당 | 무소속 | ||
서울특별시 | 47 | 27 | 18 | 0 | 1 | 1 |
부산광역시 | 21 | 21 | 0 | 0 | 0 | 0 |
대구광역시 | 13 | 2 | 0 | 8 | 0 | 3 |
인천광역시 | 11 | 9 | 2 | 0 | 0 | 0 |
광주광역시 | 6 | 0 | 6 | 0 | 0 | 0 |
대전광역시 | 7 | 0 | 0 | 7 | 0 | 0 |
경기도 | 38 | 18 | 10 | 5 | 3 | 2 |
강원도 | 13 | 9 | 0 | 2 | 2 | 0 |
충청북도 | 8 | 2 | 0 | 5 | 0 | 1 |
충청남도 | 13 | 1 | 0 | 12 | 0 | 0 |
전라북도 | 14 | 1 | 13 | 0 | 0 | 0 |
전라남도 | 17 | 0 | 17 | 0 | 0 | 0 |
경상북도 | 19 | 11 | 0 | 2 | 1 | 5 |
경상남도 | 23 | 17 | 0 | 0 | 2 | 4 |
제주특별자치도 | 3 | 3 | 0 | 0 | 0 | 0 |
총계 | 253 | 121 | 66 | 41 | 9 | 16 |
5. 4. 투표율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의 전국 투표율은 63.9%로, 총 선거인 수 31,488,294명 중 20,122,799명이 투표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 71.9%보다 낮은 수치이다.[1]지역 | 투표율 |
---|---|
서울 | 61.0% |
부산 | 60.5% |
대구 | 60.9% |
인천 | 60.1% |
광주 | 64.5% |
대전 | 63.0% |
경기 | 61.5% |
강원 | 69.3% |
충북 | 68.3% |
충남 | 68.7% |
전북 | 68.3% |
전남 | 69.8% |
경북 | 71.7% |
경남 | 66.0% |
제주 | 71.1% |
6. 각 정당 상황
정당 | 내용 |
---|---|
신한국당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구속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원내 1당을 유지했다. 민주당계 지지세가 강한 서울에서 승리하고, 부산, 제주에서 전석을 석권하는 등 지역주의 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구, 충청에서 자유민주연합에 밀려 과반 확보에는 실패했다.[1] |
새정치국민회의 | 김대중 총재의 정계 복귀와 함께 창당되었으나, 수도권, 충청, 영남, 강원, 제주에서 부진하며 79석 확보에 그쳤다. 호남 지역에서는 압승을 거두었다.[1] |
자유민주연합 | 충청 지역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대구, 강원, 경기, 경북에서도 선전하여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했다.[1] |
통합민주당 | 호남계, 동교동계 인사들의 새정치국민회의 대거 이탈로 15석 확보에 그쳐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이후 신한국당과 합당했다.[1] |
7. 선거 이후
15대 총선 이후, 신한국당은 무소속, 통합민주당, 자민련 의원들을 영입하여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였다.[1]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이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창당되었다.[1]
이 선거를 통해 지역주의 정치 구도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1] 여성 당선자는 총 9명(지역구 2명, 전국구 7명)으로, 8년 만에 지역구에서 여성 의원이 배출되었다.[1]
15대 총선 이후 재보궐 선거를 통해 의석을 얻은 의원은 다음과 같다.
년도 | 날짜 | 당선자 | 소속 정당 | 결원자 | 결원 사유 |
---|---|---|---|---|---|
1997 | 10.28 | 김찬진 | 신한국당 | 이만섭 | 신한국당 탈당으로 의원직 상실 |
11.26 | 이찬진 | 신한국당 | 이회창 | 대선 출마 | |
12.26 | 김정숙 | 신한국당 | 정재철 | 의원직 상실 | |
송현섭 | 새정치국민회의 | 권노갑 | 의원직 상실 | ||
1998 | 3.6 | 강종희 | 자유민주연합 | 한호선 | 강원도지사 선거 출마 |
4.14 | 조익현 | 신한국당 | 이홍구 | 한나라당 탈당으로 의원직 상실 | |
5.19 | 안재홍 | 신한국당 | 이찬진 | 사직 | |
11.17 | 이형배 | 통합민주당 | 조중연 | 사망 | |
1999 | 3.3 | 이훈평 | 새정치국민회의 | 김한길 | 청와대 정책수석 임명 |
3.31 | 송업교 | 자유민주연합 | 정상천 | 해양수산부 장관 임명 | |
5.25 | 김태랑 | 새정치국민회의 | 천용택 | 국가정보원 원장 임명 | |
2000 | 2.7 | 주량자 | 자유민주연합 | 지대섭 | 자유민주연합 탈당으로 의원직 상실 |
2.15 | 박상복 | 자유민주연합 | 송업교 | 자유민주연합 탈당으로 의원직 상실 | |
2.22 | 황승민 | 신한국당 | 김철 | 한나라당 탈당으로 의원직 상실 | |
3.8 | 박창달 | 신한국당 | 윤원중 | 한나라당 탈당으로 의원직 상실 |
8. 당선자
# | 신한국당 | 새정치국민회의 | 자유민주연합 | 통합민주당 |
---|---|---|---|---|
1 | 이회창 | 정희경 | 정상구 | 이중재 |
2 | 이홍구 | 박상규 | 한영수 | 이미경 |
3 | 이만섭 | 이성재 | 이건개 | 이수인 |
4 | 김명윤 | 길승흠 | 김허남 | 김홍신 |
5 | 권영자 | 박정수 | 김광수 | 조중연 |
6 | 김수한 | 김한길 | 지대섭 | 하경근 |
7 | 김덕 | 이동원 | 정상천 | |
8 | 신영균 | 신낙균 | 이동복 | |
9 | 박세환 | 권노갑 | 한호선 | |
10 | 정재철 | 천용택 | ||
11 | 전석홍 | 한영애 | ||
12 | 조웅규 | 방용석 | ||
13 | 오양순 | 김종배 | ||
14 | 김철 | |||
15 | 황우여 | |||
16 | 김영선 | |||
17 | 윤원중 | |||
18 | 강용식 |
8. 1. 지역구 당선자
8. 2. 전국구 당선자
# | 신한국당 | 새정치국민회의 | 자유민주연합 | 통합민주당 |
---|---|---|---|---|
1 | 이회창 | 정희경 | 정상구 | 이중재 |
2 | 이홍구 | 박상규 | 한영수 | 이미경 |
3 | 이만섭 | 이성재 | 이건개 | 이수인 |
4 | 김명윤 | 길승흠 | 김허남 | 김홍신 |
5 | 권영자 | 박정수 | 김광수 | 조중연 |
6 | 김수한 | 김한길 | 지대섭 | 하경근 |
7 | 김덕 | 이동원 | 정상천 | |
8 | 신영균 | 신낙균 | 이동복 | |
9 | 박세환 | 권노갑 | 한호선 | |
10 | 정재철 | 천용택 | ||
11 | 전석홍 | 한영애 | ||
12 | 조웅규 | 방용석 | ||
13 | 오양순 | 김종배 | ||
14 | 김철 | |||
15 | 황우여 | |||
16 | 김영선 | |||
17 | 윤원중 | |||
18 | 강용식 |
참조
[1]
서적
Elections in Asia: A data handbook, Volume II
2001
[2]
서적
各国の選挙-変遷と現状
木鐸社
[3]
서적
現代韓国と女性
新幹社
[4]
간행물
東亜日報
東亜日報
1996-04
[5]
서적
大韓民國選擧史 第6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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